철수는 여자친구 영희와 데이트를 하러 삼청동에 놀러 갔다. 매번 신촌에서만 데이트를 하던 철수는 삼청동의 수많은 음식점 중 대체 어디서 밥을 먹어야 할 지가 고민이다. 원래는 철수가 항상 맛집을 검색해 갔었지만 오늘은 미리 검색해둔 곳도 없다. 그러던 중 철수는 주변을 둘러보다 감각적인 간판을 발견했다.
‘오… 심플하고 감각적인 간판… 저기다!’
레스토랑은 간판처럼 깔끔한 분위기였고 둘은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철수는 영희에게 좋은 레스토랑을 알아왔다는 칭찬을 받고 둘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간판은 회사명상점명상품 또는 서비스영업 종목 따위를 표시한 것으로,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오래된 광고물이라 할 수 있다. 간판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전문가들은 간판이 인간의 상거래가 시작되는 시기와 거의 같이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다. 고대 간판의 모습은 기원전 79년 화산폭발로 매몰되었던 폼페이의 유적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술통을 맨 두 남자의 조각을 걸어 놓은 목로주점, 주신인 박카스신에게 바쳤던 등나무 가지를 묶어 술집임을 알렸던 간판, 물고기 그림을 그려놓았던 어시장 간판 등의 고대 간판은 로마 이래 17세기까지 이어졌다.
중세의 상점에도 상점을 나타내는 표식이 있긴 했지만 고대보다 특별히 발달한 점은 나타나지 않았다. 업종과 관련하여 옷 가게에 가위를, 농기구 가게에 쟁기를, 군인들이 이용하는 여관에는 검을 가게 앞에 달아놓아 표식으로 삼는 것이 고대와 비슷하게 행해졌다. 여기에 덧붙여서 간판에 가게 주인의 이름을 새겨 넣었으나,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인의 이름과 발음이 흡사한 이름을 가진 동물 등을 그려서 표시하기도 했다.
중세 암흑시대 이후, 상업 및 무역의 증가로 간판의 역할을 점점 커졌다. 사람들은 단순히 가위나 쟁기를 상점 앞에 걸어 놓는 것을 넘어서서 정교하고 예술적인 문양으로 자신의 상점을 알렸다. 성서와 왕관 문양은 서점을 나타내는 데 쓰였고, 직물가게에는 양이, 과일가게에 아담과 이브가 모티브로 사용되는 등 깊은 의미가 담긴 예술적인 간판이 많이 나타났다. 이후 18세기 들어 문자의 보급이 활발해지며 문자간판이 등장했다. 그리고 19세기 이후에는 단순한 가게 홍보를 넘어서 장식효과까지 겸하는 디자인 간판이 발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간판은 기본적으로 ‘여기에 이 가게가 있다’ 고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려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어야 하며 목표 고객층을 상점 안으로 끌어 들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상점에서는 간판을 최대한 튀게 하기 위해 크고 밝게 많이 만들기 시작했고, 이는 오히려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각각의 점포에서 여러 개의 간판을 쓰고 입간판도 내놓기 시작한 결과, 오히려 간판에 뒤덮여 소비자들이 원하는 간판과 점포를 찾기 힘들어졌고, 통행에도 불편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위의 사진과 같은 간판의 홍수 속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점을 찾아내는 것이 쉬울 리 없다.
최근 들어서는 무조건 튀기만 하는 간판이 손님을 끌어 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예술적이고 주변과 조화되는 간판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위의 사진은 서울시 좋은 간판 공모전 수상작들이다. 첫 번째 세탁소 간판은 외형에 있는 하얀 티셔츠의 테두리 덕에 멀리서 봐도 세탁소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있고 깔끔한 모습이다. 두 번째는 건어물 가게인데, 기존의 건어물 가게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보통 가게 위편에 달려있는 간판들과는 다르게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간판을 제작했으며 외형과 간판 모두 깔끔하게 통일된 이미지다.
정신 없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간판들과 위의 간판들을 비교해보자. 어느 가게가 더 가고 싶어지는 가게이겠는가? 수많은 마케팅 방법들이 존재하는 요즘, 간판은 마지막에 놓여져 있는 마케팅 수단이자 최후의 어필이다. 동시에 손님들에게는 가게의 첫인상을 간판이 결정하기도 한다.
소비자들의 눈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제 소비자들은 단순히 어떠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단순히 소비하는 데 의미를 두지 않고 자신들이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소비를 하는지, 그리고 그 소비가 어떠한 이미지로 남들에게 보여지는지 까지 의미를 두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가게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개성을 한 번에 전해줄 수 있는 간판이 가지는 의미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단순하게 가게에서 파는 물건이 어떤 것인가를 알렸던 고대의 간판에서부터 현대의 디자인적 요소를 지닌 개성 있는 간판들까지 간판은 현재도 발전 중이다. 최근에는 사람들이 직접 간판을 들고 길거리로 나와 간판을 돌리면서 광고를 하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새로운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는 팀 하포드의 말처럼 간판을 이용한 마케팅에도 새로운 가능성은 열려있다. 하지만 어지럽게 널려 있던 간판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모든 것은 과유불급이다. 소비자들에게 관심 받고 사랑 받기 위해서는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상징물로서의 간판의 모습이 필요하다. 이것이 마케팅을 미학으로 완성시킬 수 있는 간판의 앞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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