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간과 동물의 눈물겨운 우정을 중심으로 한 영화가 주목받고 있다. 시골농가에서 기르는 한 소와 그 주인할아버지와의 우정을 그린영화. 바로 ‘워낭소리’다. 이 영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가슴뭉클한 감동을 주는 작품의 내용, 두번째는 홍보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았음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독립영화로써 메이저 영화관에 올라 상영되고, 포털에서 검색 1순위에 오르는 것..쉽지도, 그리고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지 않을까.
그런데 마케팅적 측면에서만 봤을때, 나는 워낭소리의 흥행에 불현듯이 또 하나의 영화가 떠올랐다. 99년 미국을 마녀로 깜짝 놀라게한 영화, 바로 ‘블레어 윗치’ 이다. 이 둘은 닮은 구석이 있으면서도 묘하게 다른 구석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
- 지금부터 하나하나 파헤쳐 보겠다니깐!!
마녀와 늙은소의 공통점?
하나. ‘환타지’ 가득한 제품을 만들었다.
워낭소리의 배경은 시골이다. 주인공은 할아버지, 할머니, 소가 전부이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짜증나는 삼각관계, 감기보다 잘 걸리는 불치병, 사랑하고보니 동생, 툭하면 나오는 반전, 선지파티 장면, 살색의 미를 강조한 장면도 없다. 이렇게 담백할 수가!
영화는 시골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 지루할수도 있을 법 하지만, 영화는 이를 평화롭고 자연의 청취가 묻어나는 아늑한 시골모습으로 포장해 보여주고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 특히나 중장년층들에게 이런 ‘시골’이란 정신적인 안식처이자 그리워하는 노스텔지어 아닌가.
- Cine 21.com '벗지 않고도 중·장년층 유혹하다니..'에서 캡쳐. 워낭소리의 관객층에서 중장년층의 힘이 느껴진다.
하지만 워낭소리는 평범한 시골일상이 중심은 아니다. 영화의 중심은 바로 ‘우정’이다. 할아버지와 늙은소가 함께한 시간들. 모자란 부분을 서로 이해하는 그 모습을 보게 된다면, 정서적인 교감에 많은 갈증을 느끼는 사람은 누구나 감동을 받고 눈물을 주게 된다.
결국 워낭소리는 현대인들의 환타지(평화롭고 목가적인 시골풍경 + 동물과의 진한 교감)를 자극하였다고 볼 수 있다.
블레어 윗치도 이런점에서 비슷하다.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마녀를 찾으러 간 세명이 결국 실종되었고 그들이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가 발견되었는데, 블레어윗치는 그 비디오 테이프내용을 중심으로 한다. 여기서 마녀는 털끝도 안 나온다. 단지 앙칼진 비명소리와 무서워하는 표정, 심하게 흔들리는 화면이 전부이다.
서양사람들에게 ‘마녀’는 어렸을적부터 들어온 미지의 존재이다. 그리고 그 미지의 존재를 착한 요술쟁이로 때론 나쁜 마귀로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건 전부 지어낸 얘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렸을때는 믿었을지 모르겠지만, 크면서 하나의 환타지로 저장되어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마녀가 실제로 있고, 촬영하려고 했다니! 게다가 그들은 모두 실종당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너도나도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허구로 여겨졌던 마녀의 정체를 보고싶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환타지를 가진채 극장의자에 앉아버린 것이다.
둘. 제품을 ‘사실적인 묘사’로 포장했다.
만약 워낭소리가 다큐멘터리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소가 말을 한다면? 그리고 블레어 윗치가 단순한 공포영화 였다면 어땠을까? 마녀가 나오고, 비비디바비디부를 외치며 마법을 썼다면 그렇게 성공할수 있었을까?
두 영화는 사람들의 환타지를 자극하기 위해 영화 내용을 ‘사실적인’ 기법으로 포장했다. 먼저, 워낭소리의 단조로운 톤의 나레이션과 장면들은 오히려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자신만의 환타지(경험등)를 꺼내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블레어 윗치의 긴장감 가득한 표정과 답답하고 흔들리는 화면은 내가 실제로 이 상황에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영화가 마치 실제 있었던 일처럼 느껴지게 했다.(입소문마케팅관련 얘기는 뒤에…^^;)
두 영화 모두 환타지를 주제로 하고 있으면서도, 마치 현실에 있음직한 착각을 일으키는 점. 추상적인 자신들의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진짜인것처럼 꾸며 얘기하는, ‘스토리텔링’의 형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 환상치곤 리얼한데?
셋. 제품의 입소문 효과를 톡톡히 봤다.
블레어 윗치는 입소문 마케팅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실은 블레어윗치의 모든 내용(마녀존재부터 촬영내용, 배우들 실종까지 전부)은 거짓이다. 하지만 밝혀지기 전까지 사람들은 이 영화에 관련된 소문(거짓말이지만)을 믿고 영화를 봤다. 그리고 소문과 영화의 형식이 겹치면서 반응은 폭발하기 시작했고, 놀라운 속도로 퍼져가기 시작했다.
워낭소리도 이와 유사하다. 작품자체가 주는 시골의 청취, 인간과 소가 주는 감동이 소문을 내기 시작한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진 이 소문은 너도나도 워낭소리를 듣게 했고, 메이저영화관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하지만 마녀는 마녀, 소는 소.
하나. 입소문의 위치가 달랐다?
블레어 윗치는 영화 개봉전 많은 이슈가 되었다. 진짜 있었던 일인것처럼 홍보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전략은 매우 유효했다. 관객은 ‘진짜’라는 소문을 듣고 그 영화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개봉보다 앞서 입소문이 퍼진것이다.
(입소문이 아니라 작품자체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블레어 윗치가 해외로 수출되었을 때, 이미 해외는 너도나도 영화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의 흥행은 미국에서 얻은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초라했다)
하지만 워낭소리는 조금 다르다. 영화 자체가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계인과 할아버지와의 우정이라면 모를까. 워낭소리는 ‘관람한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기 시작한 작품이다. 철저하게 작품이 주는 감동을 토대로 입소문이 퍼졌다. 블레어윗치처럼 입소문이 힘을 발휘한 위치가 개봉 전이 아닌 후인 것이다.
"어이 소친구, 찍기도 전에 입소문 낸적 있냐?"
둘. 마녀는 선택으로 공포를, 소는 퓨전으로 감동을
“밤 열두시가 되자 외양간에 있던 소가 큰눈을 껌벅이며 스르르 외양간 문을 여는데….” 이 문장을 읽으면서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소는 농경사회를 거치면서 ‘친근하고’ ‘듬직한’ 이미지로 굳혀져 왔다. 한마디로 소라는 소재 자체가 줄 수 있는 이미지의 범위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인간과의 교감이 곁들여 지면서 소는 자칫 하면 ‘식상할뻔한’ 한계를 넘어 감동을 창조했다. 각 브랜드가 합쳐 그 이상의 효과를 얻는 co-branding처럼 말이다.
-이봐, 우리가 같이 있으니까 워낭소리가 나는군
반면 마녀는 때론 착하고 매력적인 요술쟁이로, 때론 무서운 공포의 존재로 알려졌다. 현실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보니 다양한 모습으로 각색되어져 온 것이다. 하지만 블레어윗치에서는 마녀를 ‘공포스런’ 이미지로만 그렸다(비록 보이진 않지만). 그리고 그 공포는 사람들의 어릴적 기억을 파고들어 갔고, 뒤 흔들었다.
셋. 속도의 차이.
위에서도 아주 잠깐 얘기했지만, 워낭소리와 블레어 윗치는 속도가 다르다. 워낭소리는 소의 죽음이 애초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점은 영화를 초반부터 끝까지 이끄는 힘이다.(여기에 우정까지 더해져 감동은 두배가 된다) 그리고 다소 느린 전개는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블레어 윗치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빠르다. 아니, 자칫 잘못하면 얘네가 대체 뭐하고 있는거지?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정상적인 속도의 줄거리 전개가 이어지다가 후반으로 넘어갈수록 급격하게 빨라지는 것이다(너무 빨라서 중간에 이해가 안될때도 있다. 놀라서 비디오를 떨어트린거 아니었나? 근데 어떻게 녹화된거지?등..).
이러한 점은 광고의 특성과도 유사하다. 광고스케쥴 보면 제품이나 브랜드와 관련되어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브랜드를 광고할 때에는 일정한 컨셉, 그리고 오랜 기간동안 시행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삼성,LG,현대등).
하지만 제품을 광고할 때에는 집중적이고 단기적인 광고스케쥴을 심심치않게 목격할 수 있다.(제품특성, 계절, 기타환경등에 따라 광고스케쥴이 달라지기도 하며, 페브리즈처럼 제품자체가 브랜드화 되었을때 일정하고 오랜기간 방영되는 광고스케쥴을 볼 수도 있다. 한마디로 그때그때 다르단 얘기!) 언뜻 들으면 무슨 뚱딴지야? 하겠지만 이런 속도의 차이를 놓고 본다면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엄마,
전 마녀도 한번 보고 싶지만, 소를 사고 싶어요.
만약에 두개의 영화가 동시에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었다면 어땠을까? (블레어윗치가 실제라는 소문을 믿는 상태에서). 자극적인 공포를 주는 마녀가 우세할수도 있겠지만, 잔잔한 감동이 주는 워낭소리의 뒷심도 굉장하지 않을까?
그런 상황에서 만일 나에게 둘중 한 영화를 보게될 기회가 생긴다면? 아마 딸랑거리는 워낭소리를 들으러 갈 것 같다. 이유? 모르겠다. 굳이 찾자면, 볼품없는 날 위해 500만원 이하로 절대 안판다는 우정. 그 우정이 내주위 어딘가에도 존재할거라는 환타지가 이유 아닐까?
- 작성자 : 우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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