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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eting Review/2016년

정처없이 걷고싶은 공간, 몰링(malling)

<정처없이 걷고싶은 공간, 몰링(malling)>


Alpha 김한슬


“내 집 같은 편안함, 제 3의 공간”

위 문구를 읽으면 몇 가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여기서 의미하는 장소는 일단 내 집이 아니다. 그런데 왜 ‘내 집’같다는 표현을 쓴 걸까? 다른 장소에서 ‘내 집’같은 편안함을 느껴 무엇을 하겠다는 말인가? 제 1, 제 2의 공간도 있는 것인가?

우선 제 1의 공간은 주거공간이며, 제 2의 공간은 근무공간이다. 이쯤 되면 제 3의 공간이 상업공간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설계된’ 공간이라는 점이다. 정확히는 나의 라이프스타일과 맞물리도록 연출된 공간인 것이다.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소비의 개념이 단순히 물건을 소유하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유희, 쾌락적 가치를 주는 경험이 목표인 경험적 소비가 주목 받고 있으며, 이러한 소비 형태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다. 소비를 통한 만족감, 혹은 체험이라는 중요한 정서적 가치가 추가된 것이다. 즉, 제 3의 공간의 특성은 이처럼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여 행복을 충족시켜주는 상업공간이며 현대 사회의 소비 트렌드를 공간으로 반영한 개념이다.


“쇼핑하게 하지 말고 몰링하게 하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편안한 것을 추구하기에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매장입장에서 수익을 창출하려면 소비자들이 스스로 움직여 상품을 구경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제 3의 공간은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살펴보고 찾아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하며, 이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가능케 하는 요소가 바로 몰링이다. 기존의 쇼핑은 상품 구입에 초점이 있지만 몰링은 여기에 여가, 문화, 식사, 오락, 산책 등의 경험적 소비를 포괄한다. 테마화된 장소에서 오감을 만족하는 즐거움을 얻으며, 이 때문에 체류시간과 지출금액이 증대하는 것이다. 소비자를 집객시키기위한 여가, 문화 활동공간으로서 녹지 및 수변시설을 갖춰놓기도 한다. 요지는 ‘쇼핑을 할 때 구매하려는 의도가 없었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이에 부합하는 시설이 바로 복합쇼핑몰이다.

‘몰’의 기원은 19세기의 유럽 광장의 대형 야외 시장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야외 시장이었기에 날씨나 기후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이를 해결한 현대적인 최초의 실내 몰은 1956년 미국 미네소타 주의 ‘사우스 데일 센터(Southdale Center)’로, 지붕이 있어 계절에 구애 받지 않고 쇼핑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국내는 코엑스가 시초이며, 수족관과 기프트샵, 식당과 서점, 영화관 등으로 구성되어 하루를 통째로 몰 안에서 소비할 수 있기까지 이르렀다. 또한, 몰링을 ‘젊은 세대’들이 향유하는 문화로 여기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베이비붐 세대 혹은 그 이상의 연령대의 소비자들도 몰링 경험 비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사교 활동을 위한 공간으로 인기가 있다.

몰링은 크게 합리적 소비패턴에 의한 계획적 몰링과 감성적 소비충동에 의한 비계획적 몰링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오감 충족을 통해 이루어지며, 몰들의 테마파크화, 혹은 다양한 가치추구로 이어진다. 시즌에 맞는 마케팅전략, 매장환경, 상품 이미지들을 통해 소비자에게 호소하며, 각각의 상품보다는 공간의 이미지화에 집중하는 것이다. 몰고어(mall-goer) 입장에서 몰 그 자체가 상품이 되는 것이다. 

예시를 들자면 국내의 타임스퀘어는 ‘음악이 흐르는 공연장’의 이미지를 추구한다. 각종 공연과 영화 상영회 등을 개최하며, 설 연휴 기간 동안에는 마사지나 손톱정리 등의 기분전환 프로모션과 어린이 직업 체험 시설 등을 운영하여 체류 고객을 늘렸고, 최근에는 황사가 심한 봄 시즌을 맞아 실내 데이트를 활성화시킬 ‘몰링 데이트족’들을 타겟팅했다. 또한 일본의 초대형 쇼핑몰인 이온 레이크 타운(AEON LakeTown)은 친환경 건물을 컨셉으로 하여 태양열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고 관련 전시들을 여는 등 해당 몰만의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


몰링의 역할

몰은 복잡한 도시공간에서 휴식과 여가생활 공간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 자체가 하나의 랜드마크로서 공간을 흥미롭고 활기차게 하며, 인근 도심의 기능들을 더욱 활성화시키는 부가효과를 지니고 있다(구은연, 2006). 몰링은 일반적인 여가활동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미국, 캐나다와 같은 서구 국가에서 가장 선호하는 여가 활동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전문커피숍과 노래방, 소주방, 사우나, 비디오방, 아케이드 게임방 등이 생겨났고, 2000년대에 PC방이 확산되었으며, 보드게임 카페나 퍼즐 카페 등 특정 목적을 위한 카페 역시 인기를 끌었다. 국내의 몰링현상은 이러한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쇼핑과 결합하여 각각의 소비자가 다양한 형태의 라이프스타일을 충족하고 설계할 수 있는 방향의 ‘원스톱(One-Stop)’ 개념으로, 여가의 트렌드 역할을 하고 있다. 괄목할만한 예시로는 시내면세점 중 국내 최대규모인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가 하루 평균 5000명 이상, 1년간 총 200만 명 가량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했다는 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유커 4명 중 1명이 롯데월드몰로 몰려 강남 유통시장을 활성화했으며, 여가를 즐기면서 쇼핑을 하는 ‘레저핑(Leisure-ping)’문화를 제시해 새로운 몰링 트렌드를 확대시키기도 했다. 

몰링을 참여하는 이유로는 다양한 이론으로 설명된다(김영재, 2012). 첫 번째, 일상생활의 반복적 작업 및 구조에 다른 구속감, 압박감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심리적, 생리적 스트레스 해소와 자유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몰에 찾는다는 보상이론개념이다. 두 번째, 일상의 학업 및 노동환경에 적응하려는 성향이 몰링 참여에도 영향을 준다는 일반화 이론개념이다. 세 번째, 과거에 느꼈던 만족감과 심리적 보상감을 토대로 다시 참여한다는 친숙성개념이다. 네 번째, 주위 사람들에 의한 개인사회이론 개념이며, 마지막으로 특별한 목적 없이 시간 때우기 용으로 몰을 방문하는 잉여에너지 이론개념으로 존재한다.



제 3의 공간 개념에 입각한 ‘몰링’의 공간적 요소

사람은 어떤 새로운 공간에 가면 그 공간에 대한 전체적 윤곽을 빠르게 그려내고자 노력한다. 이런 정신 작용을 ‘인지지도(cognitive map)’이라고 하는데, 이를 만들 때는 다음 요소들을 참고한다. 도시를 예시로 들어, 큰 도로인 ‘축’과, 축끼리 만나는 ‘중심가’, 그리고 그 중심가에 있는 주요 시설 및 거주 지역이 바로 인지지도를 형성하는 네 가지 요소이다. 새로운 장소이더라도 그 지역에 대한 ‘인지지도’를 형성하고 나면 제 3의 공간을 마치 내 집처럼 편안히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네 가지 요소들은 각기 다른 비중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데, 어떠한 공간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중심축이 이목을 끌 수 있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통로가 만나는 지점에는 특수한 설치물, 혹은 안내데스크 등 핵심 시설을 둔다. 미코노스 섬(island of Mykonos)의 고가품 상점은 계산대 위에 대나무로 만든 지붕을 설치하는 형태로 이를 어필했다. 마찬가지로 쇼핑몰의 층과 층 사이, 혹은 매장의 중심점에 대형 장식이 주로 설치되어있으며, 이가 없다면 배회를 유도할 요인이 부족한 것이다. 의미 있는 강조가 되려면 기능적 요소, 즉 실질적 용도가 있어야 하는데 계단,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등을 강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독일 뒤셀도르프의 디자이너 백화점인 세븐즈(Sevens)가 이를 잘 적용한 예시이다. 


하지만 ‘유령 상가’의 함정도…

몰링형 상가들이 전국 곳곳에 생기고 있으나 무조건적인 성공을 보장하기 어렵다. 경기침체와 부동산 시장의 장기 불황으로 공실이 발생하면 손실이 크며, 상권이 활성화가 되지 못해 미분양이나 테넌트(임차인)을 구하기 힘들어 ‘유령 상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다시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으나, 한 때 청계천 상인들의 기대치를 한껏 업고 등장한 가든파이브의 예상치 못한 침체현상이 바로 그 예이다. 

가든파이브는 2010년에 개장을 했으나, 고분양가로 인해 청계천 이주대상 상인들이 계약을 기피하면서 개장시기가 늦춰졌었다. 그리고 2015년 기준 아직까지도 일부 공간은 비어있다. 유엔알컨설팅의 박상언 대표는 “세게적으로도 복합단지 등의 경기 사이클이 3-4년 정도의 주기를 탄다”면서 “이는 랜드마크 복합단지를 짓고 나면 경기가 죽는다는 농담과도 일맥상통한다”라고 말했다. 첫 기획 당시에는 ‘호황기’이기에 많은 투자를 받지만, 준공 후 분양하는 즈음에는 불황으로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주변지역 땅값이 급등해 개발에 난항을 겪기도 하는데, 실제로 용산 국제업무지구도 개발 계획 발표 이후 서울 한강로 일대의 지분값이 1년 새 3.3㎡당 1억원까지 치솟았었다. 즉, 다양한 변수로 인해 사업이 지지 부진해지거나 상권 활성화까지 시간이 소요되기에 운영업체의 상권 운영방식과 유동인구의 특성 등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참고문헌

제 3의 공간, 크리스티안 미쿤다, 미래의 창, 2005

몰링의 유혹, 파코 언더힐, 미래의 창, 2008

외식업체의 몰링(Malling)문화공간에 따른 소비행동과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김찬우, 2016

문화마케팅이 소비자 충성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복합쇼핑몰의 몰링문화를 중심으로-, 김예랑, 2010

베이비부머 소비자들의 몰링 경험에 관한 연구: 사회적 관계성, 정체성, 행복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오은혜, 2016

가든파이브 침체 5년 … 청계천 이주 상인 ‘한숨’, SBS CNBC, 2015-10-08

원-스톱 리빙, 몰링형 상가 청라국제도시 랜드마크 ‘지젤엠청라` 분양, 매경뉴스, 2016-02-20

유커 4명 중 1명을 강남으로 이끈 롯데월드몰 1년… 몰링의 진수 보여줬다 3300여 명 청년 고용 효과, 매일경제, 2015-11-19

몰링, 신 라이프 스타일, 김아름, ELLE, 2013년 8월호

몰링(malling)을 통한 여가만족이 방문의도에 미치는 영향, 김영재, 한국여가레크리에이션학회지 2012 제 36권 제 1호

초고층 복합단지, “유령단지 우려” vs “도시트렌드 주도”, 파이낸셜뉴스, 2009-05-01

사진출처: www.sevens.de



15기 김한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