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감성, B급 마케팅
Alpha 정현정
A급 말고, B급 감성
‘늦어서 죄송합니다. 디오니소스님’ 요즘 SNS 상에서 유행하는 영상의 대사다. 개그 프로그램 ‘SNL KOREA’의 한 코너인 더빙극장에서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더빙한 것인데, 더빙극장의 기존 인기를 감안하더라도 그 인기는 대단한 수준이다. 진지하고 근엄한 대사와, 그에 어울리지 않는 일렉 기타 소리의 리라 연주,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캐릭터들의 춤. 소위 말하는 ‘병맛스러움’이 전부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SNS 사용자들은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고 배꼽이 빠지도록 웃는다. 한편으로, 어떤 사람은 도대체 이것이 왜 웃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B급 감성의 특징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예시이다. B급 감성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웃긴 영상이지만, 그렇지 못한, A급 감성만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영상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 대작 영화에 끼워 팔기 위해 제작한 저예산 영화를 지칭하던 ‘B급’이라는 수식어는 그 의미가 확장되어 고급스럽고 멋있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유치하고 싼 티가 나는 것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B급 감성과 키치(kitsch 의도적으로 촌스럽고 상투적인 예술 장르)적 재미와 무엇이 다른가 싶겠지만, B급 감성이 보다 넓은 범주라고 설명할 수 있다. 단순히 웃기고, 유치하고, 뜬금 없는 것에서 나아가 이전에는 감춰왔던 감정들을 솔직하게, 한편으론 뻔뻔하게, 또 자극적인 방식으로 표출해내는, 다시 말해 원초적 본능에 충실한 것이다. ‘B급 영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2015년 개봉했던 영화 ‘킹스맨’이 사람의 머리를 터뜨리는 잔인한 장면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600만 관객을 동원한 것이, 웰빙 트렌드 속에서 ‘맛있으면 그만이쥬’라고 외치며 설탕 한 컵을 들이 붓는 백종원이, 온갖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자”와 같은 과격한 표현을 쓰는 트럼프가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이러한 B급 감성을 대변한다.
그렇다면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 더 고급스러운 것을 찾던 우리 사회가 B급에 열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경기가 불황일 때에는 미니스커트가 유행한다거나, 단기불황에는 매운 맛이 장기불황에는 단맛이 뜬다거나 하는 말은 익히 들어본 말일 것이다. B급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불황이 장기화 되고 사회적 좌절이 만연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말초적이고 적나라한 자극에 쉽게 반응한다. 미적지근하고 고상한 소설, 영화보다 더 초현실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동조성을 중시하던 한국 사회가 점차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변해감에 따라 비주류적 문화를 저급하고 일회적인 문화라고 인식하지 않고 다양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 것 역시 중요한 이유이다. B급 감성이 단순히 SNS에서 ‘좋아요’ 하나에 소비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화, 가요, 예능, 더 나아가 마케팅 시장에까지 퍼질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B급 마케팅
엉뚱함과 유머러스함의 키치
B급 마케팅의 시작은 역시 ‘키치함’이다. 키치(Kitsch)란 독일어로 ‘저속품, 유치한 예술작품’이라는 뜻으로 키치 마케팅은 촌스럽고 유치한 감성에 오락성을 가미한 마케팅 기법을 이른다. “정말 이게 MS 광고라고?” 올 상반기 Microsoft가 개그맨 유세윤의 광고 에이전시 ‘광고100’에 의뢰한 광고에 대한 반응이다. 100만원의 제작비로 광고를 만들어주는 ‘광고100’의 영상에는 90년대 ‘지구방위대 후레쉬맨’을 따라 한 듯한 등장인물, 그리고 패러디라고 하기에도 무색할 만한 낮은 영상의 퀄리티 등 유세윤 특유의 B급 코드가 가득했다. IT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고루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MS 사가 재치 있는 광고를 통해 ‘쿨한’이미지로 변신하기 위해 택한 선택이다.
비주류를 아우르는 다양성, 탈권위성
그러나, 키치적 매력만으로 승부를 건다면 그것은 B급이라고 할 수 없다. 재치와 유머뿐만 아니라 주류에 포함되지 않는 감성을 아울러 B급 감성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최근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는 케이블 방송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지상파 방송사보다 제약이 적다는 장점을 내세워 jtbc, tvn 등의 방송사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하고 신선한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단순한 쿡방이 아닌 요리를 스포츠화시킨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 여대생 스폰서 등의 다소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를 솔직하게 풀어낸 드라마 ‘청춘시대’, 허구한 날 술만 마셔대는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드라마 ‘또 오해영’ 등이 그 예이다. A급만을 다루는 공중파였다면 이러 저러한 이유로 방송이 불가했을 법한 콘텐츠들이다.
B급 감성으로부터
시작된 다양화 현상은 다양화에만 그치지 않고 탈권위주의까지 이어진다. 이제는 예쁘고 잘생긴 모델이 나오는
광고보다 인터넷에 떠도는 웃긴 동영상이 더 인기 있는 시대이다. 이에 따라 당대의 가장 아름다운 연예인의
전유물이던 화장품 모델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에뛰드하우스는 이번 하반기 모델로 배우 마동석을 발탁했다. 기존 모델이던 가수 크리스탈과 함께 광고 영상 속에서 “나 에뛰드하우스
사장인데, 공주님 환불하시려고요?”라고 말하는 마동석 덕에
해당 영상은 SNS에서 핫하게 바이럴 되고 있는 중이다. 절대적
미의 기준에서 벗어난 연예인을 화장품 모델로 채택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부터 더페이스샵은
농구선수 서장훈을, 이니스프리는 가수 강균성을 그들의 얼굴로 삼았다.
인포메이션(Information)보다 임프레션(Impression)
최근에
B급 마케팅은 또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제품에 대한
설명 없이 전체적인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각인시켜 매출을 향상시킨다는 것이 그것이다. SSG닷컴은 올해
초 SSG를 소리 나는 대로 읽은 ‘쓱’ 광고를 선보였다. 배우 공유와 공효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코트 하나 쓱해야겠어요’, ‘마음에 쓱 들어’ 등의 대사만 할 뿐 SSG닷컴에 대한 설명은 하나도 없는 이 광고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유튜브 영상 조회수는 250만
건을 기록하고 매출은 동기 대비 32% 증가하면서 B급 마케팅의
효과를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부동산 정보 앱 ‘다방’ 역시 직접적인 어플에 대한 설명 대신 영화나 드라마를 패러디한 광고로 자연스럽게 제품 특성을 전달하는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SSG닷컴의 ‘쓱’ 광고를 제작한 황보현 책임자는 “요즘 광고는 인포메이션보다 임프레션이
중요하다”며 “제품에 쓰인 성분, 가격 등을 일일이 광고에 나열하는 것은 무의미
하다”고 말했다.
B급 마케팅이 가야 할 길
B급 감성에 취해 있다 하더라도 주의해야 할 점은 명확하다. 포장은 싼 티가 나더라도 내용물은 그렇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품의 품질이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B급 마케팅이 매출 향상을 보장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광고나 마케팅만 소비자들의 뇌리에 남고 매출 성과는 미미하다. 그 대표적 예가 2002년 롯데리아에서 선보인 ‘크랩버거’이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패러디 한 광고는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광고 카피 “니들이 게맛을 알아?”를 남겼다. 그러나, 당시 크랩버거는 일반 버거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새우버거나 생선버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혹평을 받았고 제품을 선 보인지 1년만에 단종되었다. 2010년 로버트 할리가 특유의 사투리로 “한 뚝배기 하실래예?”를 외치며 나온 쌀국수 뚝배기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 수많은 패러디 영상을 낳았지만, 아무도 해당 제품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쌀국수 뚝배기는 수 차례 제품명을 바꾸다 결국 출시된 지 2년만에 단종되었다.
한편으로는 B급 마케팅이 아직은 전반적인 마케팅보다는 광고에만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아쉬운 점이 있다. 앞서 나열한 사례들이 대개 광고 사례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이는 기업이 자칫하면 가벼워 보일 수 있다는 B급 마케팅의 단점 탓에 장기적이고 전반적인 마케팅 전략보다는 비교적 일회적인 광고에만 B급 감성을 녹여내는 것으로 해석 될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기업 이미지를 키치함으로 잡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항공사 ‘쿨룰라’를 보면 B급 마케팅의 확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아공의 원주민 부족 중 하나인 줄루족의 말로 ‘쉽게’라는 뜻을 가진 ‘쿨룰라’사는 유머러스한 기내방송으로 유명하다. “짐을 잘 챙겨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두고 내리시려면 저희가 좋아할만한 물건만 두고 내려주세요”, “저희 항공사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승객 여러분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기쁜 만큼, 여러분이 저희에게 돈을 벌게 해준 것이 기쁘길 바랍니다” 등의 기내방송으로 항공사 특유의 딱딱하고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벗은 덕에 이 항공사는 창립 5년만에 승객 수 500만 명을 달성했다.
‘자극성’에만 치중된 B급 마케팅 현상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원초적 본능에 몰입하게 된 원인이 불만족스러운 현실로부터의 도피에 있는 만큼 극단적인 유희와 같은 방법의 원초적 자극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직접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따라서 B급 감성이 표현할 수 있는 원초성의 긍정적 측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B급 감성이 선정성 외에도 원초적 솔직함과 유쾌함, 타인이 아닌 다양한 자기중심적 가치의 인정 등의 긍정적 에너지가 있다. 이는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은 없지만 촌스럽고 어수룩함이 주는 매력, 예의를 차리지는 않았지만 솔직하고 당당한 표현으로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전복하는 쾌감에서 온다. B급 감성의 유행이 이러한 긍정적 에너지를 십분 활용해 B급 마케팅이 비주류와 주류의 경계를 허물고, 사회에 만연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뜨리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출처
B급 코드 가득..."정말 MS 광고 맞아?"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60203162555
B급 감성으로 A급 효과 톡톡히! ‘키치 마케팅’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ma450815&logNo=220667232832
B급의 반란, 불황의 역설 “상품 소개, 뭣이 중한디”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C21&newsid=01230006612716816&DCD=A00302&OutLnkChk=Y
B급 마케팅
‘B급’에 꽂히고 ‘병맛’에 물들고~ 중독성과 황당함으로 무장한 ‘B급 코드’, 대중문화 넘어 광고계 강타
http://www.the-pr.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25
트렌드 코리아 2016, 김난도
'Marketing Review > 2016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뮤지엄 마케팅 (0) | 2017.05.01 |
---|---|
미니멀리즘 (0) | 2017.05.01 |
소비 시장의 주역이 된 영포티 (0) | 2017.05.01 |
풍자마케팅 (0) | 2017.05.01 |
현대백화점의 경험 마케팅 (0) | 2017.05.01 |
IKEA의 이색 체험 마케팅 (0) | 2016.06.28 |
신박한 조합, ‘케미 마케팅’ (0) | 2016.06.28 |
레트로 마케팅(Retro Marketing) (0) | 2016.06.28 |
마케팅과 뇌 과학의 만남, 뉴로마케팅 (0) | 2016.06.28 |
인공 지능과 디지털 마케팅 (0) | 2016.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