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6일.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프리 스케이팅 경기. 준비한 연기를 끝내고 마치 그 동안 참아왔다는 듯 눈물을 터뜨린 김연아 선수의 모습에,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필자마저도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 획득이 확정되고 잠시 장내를 정리하는 동안 TV에서 흘러나오는 광고들을 보면서, 나는 감동의 눈물을 다 닦아내기도 전에 엉뚱한 생각이 빠져버렸다. 이어지는 광고마다 줄줄이 김연아를 모델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어컨, 자동차, 은행, 스포츠용품, 휴대폰… 또한 그들은 모두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그녀의 금메달 획득을 축하하는 광고카피들을 내보내고 있었다.
KB 국민은행 CF 삼성전자 애니콜 CF 나이키스포츠 CF 현대자동차 투싼 CF 삼성전자 하우젠 광고
‘저렇게 많은 CF를 찍었으면 대체 얼마를 벌었다는 거야?’, ‘저 시간에 광고를 내보내려면 돈 많이 들었겠다… 방송사는 그럼 대체 얼마를 벌어들였을까?’ 조금 전의 감동은 벌써 잊은 채 머릿속엔 금방 이런 생각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이어진 김연아 선수의 인터뷰… 그런데 이번에도 그녀의 인터뷰 멘트보다, 그녀가 착용하고 있는 귀걸이가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마치 ‘피겨 퀸’이라는 것을 상징하듯 반짝거리는 왕관 모양의 귀걸이를 보면서, ‘앗, 귀걸이 예쁘다! 저것도 협찬해준 거겠지?’ 하는 생각이 먼저.
아니나 다를까, 경기가 끝나고 인터넷에 접속하니 그곳은 이미 김연아 선수의 이야기로 도배가 되어있었을 뿐만 아니라 나처럼 그녀를 통한 상업적 효과를 벌써 계산해놓은 기사들도 적지 않았다. 이처럼 지난 동계올림픽의 가장 큰 화젯거리는 단연 ‘김연아’라고 할 수 있다. 동계올림픽 초미의 관심사는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부문 금메달이었고, 그만큼 국민들의 기대가 컸던 경기이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이런 기대와 성원들이 김연아 선수에게 부담이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부담이 없었다’라며 담담히 세계신기록을 세우고는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런 그녀를 두고 국내는 물론 해외 각종 언론매체들까지도 ‘피겨여제의 탄생’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린 지금까지도 연신 이슈가 되고 있다.
해외언론에서 보도한 김연아 선수
그리고 그러한 이슈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김연아 효과’라고 불리는 마케팅 효과이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트위터(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김연아도 한다”라는 한마디에 국내 가입자수가 급증할 정도로 올림픽 전부터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보여주었던 김연아 선수. 현재 그녀를 모델로 하고 있는 기업과 브랜드는 KB 국민은행, 현대자동차 투싼, 나이키스포츠, 삼성전자 하우젠, 삼성전자 애니콜, 뚜레쥬르, 제이에스티나, QUA, 매일유업, 스무디킹, LG 생활건강 샤프란과 라끄베르 등 현재 총 14개 기업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은 올림픽 경기 이후, ‘김연아’라는 이름 세 글자를 내세운 덕택에 저마다 ‘판매급증’이라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중이다. 그 효과는 그녀가 광고한 제품뿐만이 아니다. 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해 다시 캐나다로 출국할 당시에 입었던 쟈켓과 가방까지도 벌써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을 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핫이슈가 되고 있는 그녀의 마케팅 파워는 웬만한 톱스타들을 넘어선 어마어마한 경지가 아닐 수 없다.
화제로 떠오른 나이키 N98 YUNA GOLDEN MOMENT SPECIAL EDITION과
쿠아 로포츠가방을 착용한 김연아 선수
그런데 나는 또 여기서 엉뚱한 생각이 든다. 과연 김연아 효과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각종 언론매체와 기업들은 저마다 ‘김연아’라는 이름을 내걸어 이득을 보았고 국내에서는 비인기종목이었던 피겨스케이팅이 전국민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지만, 요즘 들어 그녀와 관련된 기사를 접할 때마다 그곳에 왠지 ‘김연아’는 없고 김연아 ‘효과’만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까지 많은 스포츠선수들이 한때 이슈를 만들고 주목을 받다가 사라져갔다. 스포츠선수가 경기 결과로 평가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결과가 좋을 때에는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다가 조금 부진하면 기다렸다는 듯 금새 질타를 받고 그로 인해 자신감을 상실한 채 도태되는 악순환을 겪는 사례를 우리는 이미 여러 번 지켜 보아왔다.
더 이상 그가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가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기업들은 잔인하게 등을 돌리고 말게 될 것이고 아마 그러한 시기는 그 선수의 성적이 부진할 때에, 즉 선수로서 가장 힘든 시기에 찾아올 것이다. 마케팅은 기업의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활동임과 동시에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다.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정을 지향하는 시스템이, 단순히 합리적이지만은 않은 인간을, 인간세상사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사람은 없고 마케팅만 있는 마케팅. 아마도 이는 마케팅을 공부하는 우리들이 반드시 경계해야 하고, 또 풀어내야 할 숙제가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인지 순수하게 올림픽 금메달을 꿈꾸었던 어린 소녀가 그 꿈을 이루고 세계 정상의 자리에 선 순간에,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이야기가 ‘김연아의 마케팅 효과’라는 점이 왠지 씁쓸하게 다가온다. 한 광고에서 말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선수들’을 기업들은 값어치 있는 ‘마케팅 도구’가 아닌 진심으로 값진 ‘땀 흘리는 선수들'로 보아주는 것이기를. 김연아 미니홈피의 평범한 소녀들같은 밴쿠버 올림픽 선수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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