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뿔났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실버(silver)’라는 수식어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 제2의 인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금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온화하고 고상한 기품을 상징하는 실버는 오늘날의 노인세대를 지칭한다. 일부에서는 이미 노인과 실버 세대가 동격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실버라는 수식어가 기존의 '노인'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이미지로 대체하는 데에 효과가 없다는 통계자료를 내놓고 있고, 노인들은 오히려 실버라는 수식어를 기피한다는 기사도 종종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오늘 필자가 하고픈 말은 '실버'마케팅이 아니라, 실버'마케팅'이므로.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 내부에서도 초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누구나 한번쯤은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우리나라의 인구 불균형에 관련된 도표를 접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출생률 감소와 더불어 급격한 노령인구 증가라는 트렌드는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으며 따라서 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인구 통계적 변화와 사회 경제적 양상을 바탕으로, 노인들이 상당한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 집단이자 사회의 중추적인 집단으로 부상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에 따라 실버소비자들의 시장 영향력이 커질 것이며 따라서 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실버상품이 핫 아이템으로 떠오를 것도 자명하다. 그러나 “앞으로 실버세대가 시장의 주요 고객으로 급부상할 것이다”라는 식상하고 뻔한 명제를 누구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노심(老心)을 잡기 위한 효과적인 국내 마케팅은 다른 나라에 비해 그 발전 속도가 더디다.
늙은 노인, 젊은 노인
오늘날의 노인들은 예전의 노인들과 전혀 다르다. 예전의 노인들이 자녀들의 용돈에 의지하며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머물고 사회 활동이 적은 사람들이었다면, 오늘날 이와 같은 특징을 지닌 노인들은 대체로 80세 이상이다. 오늘날의 노인들은 신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자녀나 가족으로부터 독립적이다. 노인들이 받을 수 있는 환경, 의료서비스, 경제적 안정도는 더 나은 쪽으로 변화했으며 요즘 세대의 노인들은 과거 세대에 비해 교육수준도 높고 퇴직 연령도 낮아졌다. 즉, 효과적인 마케팅을 위해서는 노인을 하나의 그룹으로 놓고 접근하는 게 아니라, '젊은 노인'과 '늙은 노인'을 구분해야 한다. 특히, 젊은 노인의 경우에는 활동력이 떨어지고 기력이 약한 늙은 노인과는 달리, 오히려 활동 욕구가 증가하는 시기이다. 퇴직 전까지는 직장생활 등으로 시간이 없었다면 이제는 그 동안 벌어둔 경제적 물질을 바탕으로 삶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지 않는 한 실버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할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기 어려울 것이다.
의약품 광고, 생명보험 광고, 그리고..?
기업들이 각종 프로모션과 이벤트를 통해 노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홍보활동을 하고 있으며 시력이 약화되는 노년층을 배려한 상품 외관이나 휴대폰 컨텐츠의 단순화, 여행 등 여가활동을 위한 실버 상품들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 상품이 노인들을 대상으로 개발되었다기보다는, 젊은 세대들을 위한 상품을 '만드는 김에' 약간의 변형을 가해 ‘하나 더’ 만들어내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도 실버 마케팅이 더디게 이루어지는 예는 TV 광고에서 찾을 수 있다.
실버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광고로 무엇이 떠오르는가? 필자는 이 포스트를 작성하는 데 도움을 얻고자 광고를 전공하는 지인에게 기억나는 노인 대상 광고에 대해 물었다. 돌아온 문자메시지는 케토톱과 이가탄 같은 의약품, 보험, 노년기의 사회현상을 다룬 광고들의 예시, 그리고 광고의 타겟은 노인이 될 수도 있으나 그 노인을 모시는 자식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이었다.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긴 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필자가 머리털 나고 지금까지의 수년간 늘어난 노인층 비율에 비해 광고의 양과 질은 크게 성장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노인층이야 말로 TV시청 시간이 상당하고, 또 일정한 시간대에 집중되어 있어 효과적인 광고노출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SHOW를 하라 시리즈의 '부모님 편'과 교보생명의 광고는 그래서 더 즐겁고 유쾌하다. 노인들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길 원하며 새로운 시도를 꺼린다는 선입견은 언제나 맞아떨어지는 명제가 아니다. 때로는 노인들도 즐거움을 추구하고 새로움을 원한다. 광고의 스토리텔링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1993년 뒤셀도르프의 그레이 광고대행사 조사에 따르면 황금 연령층의 90%가 젊은 애들 보라고 만든 광고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답했으며, 78%는 광고에 자신과 같은 노인들이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무려 10년도 더 된 조사이니만큼 오늘날의 노인들은 이보다도 더 간절히 자신들을 위한 광고가 나오길 기대할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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