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힐링(Healing)의 시대이다. 음식점을 가도 서점을 가도 TV를 틀어도 ‘힐링’이 등장하지 않는 곳이 없다. 대선을 앞둔 정치계에도 ‘힐링’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으니 말 그대로 대한민국 전체가 힐링에 매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판업계의 경우 작년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을 시작으로 힐링 서적들이 꾸준히 팔려나가고 있고 TV 토크쇼 역시 ‘힐링캠프’, ‘승승장구’ 등 게스트의 아픔을 공감하고 치유하는 프로그램들이 인기이다. 템플 스테이를 찾는 사람의 수는 더욱 증가하고 있으며 건설업계와 식음료에까지 온통 힐링 열풍이다.
사실 이런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다. 약 10년 전엔 ‘웰빙(well-being)’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너나할것없이 웰빙을 외쳐대던 목소리들은 어느새 사그라들고 지금은 모두들 ‘치유’에 온 힘을 쏟고 있다.
well-being은 말 글대로 ‘잘(well) 사는 것(being)’ 이다. 반면에 힐링(healing)은 ‘치유’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단순히 ‘잘 살자’는 웰빙을 넘어서서 정신적인 치유까지 겸할 수 있는 힐링이 새로운 사회적 코드로 뜨고 있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힐링 신드롬을 무한경쟁 속에서 공감과 치유를 원하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반영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여기에 세계적인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불안감이 더해지고 있다. 상처가 많으니 치유할 곳도 많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학생들, 업무 스트레스에 피곤한 직장인 등 거의 모든 세대가 상처입은 상황에서 치유라는 키워드가 먹히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또한 끊임없는 경쟁에 지쳐,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의 조건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힐링 열풍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힐링 열풍에 힘입어 힐링 마케팅 역시 뜨고 있다. 공감과 위로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기업들이 놓칠 리가 없다. 힐링 마케팅은 ‘힐링’이라는 코드를 마케팅에 접목한 것으로, 공감과 위안을 주는 광고를 만들거나 힐링 여행등 ‘치유’자체를 컨셉으로 한 상품 개발 등이 대표적 힐링 마케팅이다. 고객의 기분과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감성적 동인을 통해 브랜드와 고객 간의 유대 관계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감성마케팅의 일부라고도 볼 수 있다.
다음은 동아제약의 '박카스' CF이다.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해있는 남자들의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하여 큰 호응을 얻었던 광고이다. ‘세상 사는게 피로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라는 카피로, 자신의 상황이 힘들더라도 누군가는 부러워하고 있을 현재의 삶에서 행복을 찾자라는 메시지는 ‘엄마’를 주제로 한 후속편에서도 이어졌다.
다음은 취업포털인 잡코리아의 광고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장, 이사 등 여러 직급의 캐릭터들은 직장인들이 공감할 만한 얄미운 행동을 하고, 광고 끝부분에 '인간 대포'로 하늘로 날려보내진다. 이 광고는 실제 회사 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인들에게 공감을 얻어 화제가 되었었다.
이처럼 광고에 위로 받은 소비자들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이 감정은 해당 상품 또는 기업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로 연결될 수 있다.
힐링 마케팅이 인기의 인기는 단순히 힐링 코드가 사회 전반적으로 유행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주목받으면서 마케팅이 소비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에 초점을 둬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라젠드라 시소디아 미국 벤틀리 대학 마케팅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고객의 삶을 개선하고 고객을 기분 좋게 하는 마케팅이야 말로 고객의 마음을 사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힐링’ 마케팅은 고객과의 소통과 공감을 중요시하는데,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Interactive마케팅이 유행하는 등 기업과 소비자 간의 소통이 쉬워졌다는 점도 힐링 마케팅에 힘을 실어줬다고 할 수 있다. 한가인이 등장하는 보해소주 '월'광고가 대표적이다. 섹시한 여자 연예인을 전면에 내세웠던 기존 주류 광고와 달리 노래 ‘여수밤바다’의 뮤직 비디오 형
식의 이 광고는 소주업계 최초로 소비자가 참여하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 광고다. 소비자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이용하여 한가인이 추천하는 음악을 듣고 세 가지 유
형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 광고는 열흘 만에 55만 명이 시청할 만큼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그러나 힐링 마케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힐링’의 지나친 상업화에 대한 비판이 주 내용이다. 겉으로는 힐링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힐링과는 거리가 먼 상품들이 등장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스트레스를 안겨주기도 한다. 몇몇 입시학원이 주최한 수험생을 위한 힐링 캠프가 실제로는 부실한 컨텐츠로 학생들을 더욱 힘들게 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중, 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고가의 힐링 프로그램 등 기업이 단순히 돈벌이 대상으로만 힐링을 이용한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패턴이 계속된다면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을 수 밖에 없다.
또한 힐링 열풍이 지나치면 오히려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힐링에 과도하게 집중하다보면 지나친 자기 합리화에 빠져 원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웰빙 대신 힐링이 등장한 것처럼 몇 년 후에는 또다른 트렌드가 힐링 코드를 대신할 것이다. 그 트렌드가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런 문화 코드의 변화를 잘 캐치하는 것도 좋은 마케터가 되기 위한 자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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